불만에 대한 단상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저 자신만의 유희일 뿐이라고 오랜 시간을 생각해 왔다. 심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행위 자체를 즐겼고, 그 즐거움을 통해 완성된 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선보이는 것도 즐거웠다.



 그렇다면 정말 나에게 창작 행위란 그저 즐거움을 위한 도구였을까? 라고, 생각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나 스스로를 ‘작가’로서 대하기 시작한 때였고 ‘작가’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을 다시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내 작품들은 즐겁지 않았다. 어둡고 무뚝뚝했으며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이나 행복감보다는 의문 혹은 불쾌감 등을 던져주는 작품들이었다. 자연스레 나는 어떻게 이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을 즐거운 감정을 가지고 그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답은 간단했다. 내 작품들은 ‘불만’에 대한 작품들이었다. 내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던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불만이던, 혹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든 간에 나는 어떤 부분에서든 불만족스러운 것에 대해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을 그리는 행위로 토해냄으로써 스스로가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거나, 혹은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 불만스러운 부분에 대해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어 위안받고자 했던 것 같다. 불만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 냄으로써 불만에서 오는 분노나 슬픔, 우울, 스트레스 등을 해결해 왔던 것이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떨쳐내는 행위였기 때문에 나는 창작을 ‘유희’로서 받아들여 온 것이다.


 앞으로의 작업 역시 유희적인 행위로 접근하고 싶다. 작업을 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주제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고 해결해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보는 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만들을 대신해서 표출해 냄으로써 그들에게 내가 가졌던 불만 표출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